자격증명의 트랩
시험준비를 하다보면 멘탈이 수시로 박살나기 쉽습니다. 매일 푸는 데일리 쪽지시험을 칠 때도 그렇고, 모의고사때 기대했던 점수가 나오지 않을 때, 강사의 질문에 곧 바로 답하지 못했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 끊임없이 드는 생각은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입니다. 수험생 시절에는 이런 생각에 정신적 고통에 몸부림 치며 이윽고 합격이라는 자격증을 받고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고 나면 어느 새 까먹습니다.
수험생 시절의 멘탈이 을이라면 합격 후의 멘탈은 갑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이 이제 만만해 보이고 이 바닥은 내가 다 먹을 것이라는 부푼기대에 계좌의 숫자가 바뀌는 상상을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수험시절에는 결코 배울 수가 없고 단지 가늠만 했었던 정도였지만 그게 이 정도였냐면서 질려버리게 됩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문제없고 번듯해 보이더라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 "난 틀렸어" "난 여기까진 거 같아" 라며 자괴감을 느낄 수 있음은 쉽게 고백하지 못합니다. 쪽팔리기 때문이지요.
사회는 끊임없이 내게 자격증명을 요구합니다. 대학합격통지서, 취헙합격, 자격증합격 뿐 만 아니라 매력이나 자존감과 같은 추상적 가치까지 자격증명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쉬벌 내가 자존감이 있다는 것까지 굳이 타인에게 증명까지 해야 할까?"
서울대 가봤자 성공 보장 못한다 vs. 그래도 학교다닐때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가면 좋지 않냐 라며 논쟁이 붙기 쉽습니다. 그럼 또 받아칠 수 있는 말이 많죠. 이렇게 받아 칠 수도 있습니다. "니가 서울대를 안 가면 다른 건 뭐 잘할 수는 있고?" 어떤 말을 해도 자격증명의 트랩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심각한 기시감이 듭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공부법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과탑선배가 알려주마
국가교육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어느 날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학습법은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존나 외우네요?
잘생겼습니다. 훈훈하네요. 서울경영이면 문과원탑인데 과탑까지? 개이득
이 학생의 과탑비결은
교수님 강의 녹취 + 받아적기 + 받아적은걸로 요약하기 + 핵심서브노트를 통한 엑기스암기
생각했던 연구의 방향과 기대와는 너무 달라서 현타가 씨게 온 이혜정 소장.
너님들 분명 뭐 특별한 거 있을 텐데 그딴 거 없었고 통암기였음??
그러던 중 뜻 밖의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질문하기 좋아하고, 비판적사고를 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학점도 높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던 것이죠. 거기서 기존의 비판적으로 사고했던 자기행동을 수정하게 됩니다.
평소 질문하기를 좋아해서 수업시간에도 종종 교수한테 질문 던졌던 이 학생. 근데 학점은 개판이었습니다.
전공과목도 좋고, 질문도 좋고, 내 의견도 있는데 학점만큼은 낮았습니다.
서울대까지 갔는데 니가 멘탈이 약하고 자존감도 없고 대가리가 빡대가리라서 학점이 걸레처럼 나온거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그러던 중 이 학생은 방식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다른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필사적으로 받아적기 시작한 것이죠.
좋나 좋긴한데 내가 이러려고 이 학교에 왔냐는 표정입니다.
아메리카로 시점 전환을 해보까요?
낭만 오지네요 핫도그 사먹고 싶네요
아 핫덕인가?
ㅇㅇ. 큰 기대 안했음
아메아메
아메리카노
자전거 저거 무단횡단인가요?
다음 중 자전거가 그려진 그림을 골라보세요
존나 귀찮은 그거 생각나네요 봇 판별기
근데 결과보고 충격받음
조까세요 그걸 왜 다 받아적고 있죠?
파이팅 넘치는 천조국학생들
내 생각은 내 생각이고 교수생각은 교수생각아님?
반박하긴 힘든데 이건 좀 약간 함정카드 같네요
종류가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라..
바로 이 포인트가 이 연구에서 미처 처음부터 예상하지 못했지만 중요한 데이터로 남을 수 있는 엑기스 포인트였습니다.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수용적 사고를 강제당하다 하다보니 원래 있던 자존감 마저 박살이 나는 것은 아닐까.
자존감 암기 메뉴얼 처럼 리스트 정해서 작가나 강사 전문가 인플루언서들 말하는거 다 암기하고 캡쳐하고 받아적고 그걸 또 나 자신한테 이식하는 것을 자존감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자존감이 생긴것이 아니라 자존감이식행위가 아닌가요 그건?
아직 현타가 뭔지 직접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육은 더디지만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K잼민이들
다음 중 애인감으로 적절하지 않는 것은?
다음 중 썸으로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다음 중 찐따와 일치하는 것은?
다음 중 소개팅에서 할 만한 행동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특히 인간관계에서 기출변형은 언제든 발생하는 법이죠
천조국이라고 해서 딱히 다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디테일이 달랐다. 그래도 열린사고를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갖췄다. 정도가 요약이 될 것 같네요.
이 다큐는 무려 2016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https://youtu.be/CNrzvdcU9SE?si=DJHDMFx3Ym_2sbNK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그거라도 안하면 할 게 없는게 더 문제 아닌가요? 학습자 역시 더 맛있게 떠먹여 주길 바라는 적극적인 주입을 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니 생각은 뭔데?" 라고 물으면, "응. 니 생각 별로 안궁금"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생각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로 돌려막기 하는 것 같단 말이죠. 생각의 교환 과정보다 생각의 일치 여부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애초에 들어오는 인풋 자체가 다양하지 못한데, 거기서 무슨 다른 생각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공인중개사 수험시절의 회고
이 영상을 보고 이 글을 작성하던 중 저의 공인중개사 수험생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제주에 머물다가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중개사 공부를 시작했었지요.
어떻게 공부를 했냐면
지문 하나당 소요되는 시간까지 재가며 스톱워치 켜서 풀어보기도 했고
다큐에 나왔던 것처럼 강사들의 말을 녹취하고 노트에 기록하는 것도 해봤습니다.
이 정도 시험에 떨어지면 내가 아니지라고 자만심을 가질 무렵 모의고사에서 죽쓰고 멘탈나가서 상담을 신청한 흔적입니다
저는 학원을 다녔으므로 칠판에 판서한것 까지 캡쳐했습니다
학원에서 수업듣고 인강으로 복습했죠.
이렇게 수업끝나면 어미 쫓아다니는 강아지들처럼 수험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찰칵찰칵 소리가 납니다
개근해서 받은 선물
애초에 1년 안에 합격이 목표였기 때문에 3월부터 셀프 멘탈지침서를 만드며 작정하고 달려들었죠.
나중에는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7월 부터는 학원을 나가지 않았고 카페가서 혼자 커피마시고 데이트도 하고 술도 오지게 먹으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요약집만 회독했습니다.
교재는 들고다닐 게 너무 많아서 모조리 스캔떠서 아이패드로 공부했습니다.
시험 끝나기 전까지도 모르는 문제는 있었습니다.
왜 합격했을까? 생각해보면
일단 존나 열심히 한 것도 있었는데
시험은 불안과의 싸움이란 걸 알았습니다.
특히 완벽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이 시험때까지 갑니다.
강사들은 그 과목에서만큼은 다 도사들입니다.
수험생의 심리상태까지 다 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험생의 심리란 언제나 불안하므로 강사들의 그 말이 잘 와닿지가 않습니다.
합격하고 난 다음에서야 아 그 말을 그래서 했구나 하고 생각하지요.
저는 업플즈 활동 경력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미리 캐치해서 다른 수험생들이 하는 뻘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의도적으로 각을 세웠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거 딱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수험생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쓰잘데기 없는 글쓰는 거 안했습니다.
둘째는, 학원에서 다른 수험생들과 맞고 틀린 것에 대해서 호들갑 떨며 이야기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 영향받지 마라고 해서 안 받는 것도 아니고, 저 역시도 불안감은 달고 살았습니다.
중개사 수험생 분들을 생각하며 쓴 글은 아니었지만, 공인중개사 시험이 2달 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몇 글자 더해봅니다.
유튜브에 다른 수험생들이나 합격생들이 나는 이렇게 공부했다는 영상에 특히 영향받으실 겁니다.
기출문제만 보고 합격한 사람도 있는데 시험은 모르는 겁니다.
수험생을 일부러 떨구려고 개같이 낸 문제도 있습니다. 틀리라고 낸 문제입니다. 틀리면 됩니다.
게다가 수험생의 입장과 수준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기본 베이스가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만 해도 원래 학습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성격도 영향을 미칩니다. 시험에서는 차분하거나 대차거나 둘 중 하나인 쪽이 유리합니다.
수험의 영역과는 관점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이 자격증이 재밌는 게 있습니다. 쉽게 합격한 사람보다 어렵게 합격한 사람이 업계에서 잘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4수 5수 해도 됩니다. 나가서 잘하면 됩니다.
게다가 중개란 것도 절대다수는 아파트 중개만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분야가 다양합니다.
그 분야를 파고 연구하는 게 더 낫습니다.
저도 가끔 왜 땄지 라는 생각도 들지만 따서 나쁠 건 없습니다.
서울대를 왜갔지 라는 생각이 드는 서울대생도 있겠지만 가서 나쁠 건 없습니다.
서울대 안갈거면 나는 공부에 적성없으니 장사해서 돈벌면 되듯이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새로운 도전이라도 해보는 것이죠.
그 거 안할거면 다른 거 뭐할거냐는 거죠. 다 부질없다며 씹고다니게요?
마치며
수용적 사고가 갖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에 환장할 것도 아닌 게 둘이서 눈 맞으면 자존감이 있든지 말든지 서로 좋으면 사귑니다. 알고보면 그 자존감이라는 것도 권위에 의존한 이식받은 자존감이라면 어떡하죠? 그게 진짜 자기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영역을 해소할 때입니다. 존중과 추종은 구분해야 합니다. 추종은 경멸로 바뀌기 쉽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추종하고 경멸하는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그 동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모습이 더 비참한게 아닐까요? 마치 목줄에 걸려있는 게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목줄을 풀어도 그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것 처럼 말이지요.
이상 자아해방센터 업플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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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플즈
당신의 내재된 매력을 발견히고 자기주도적 관계를 체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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